칼럼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딸에게 매일 독약을 먹인 엄마, 왜? 영화 '런(RUN)'

발행일시 : 2020-11-23 09:50
영화 '런' 스틸컷 <영화 '런' 스틸컷>

시간을 통제한다면, (대체로 그렇듯) 공간과 인물에서 위험과 위기가 비롯된다.

영화 배급사에서 홍보한 대로 <런>에서 '가장 안전했던 그곳이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된다. 이때 공간은 인물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낯선 공간에 던져져서 위험해지는 설정이 아니라,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이 낯설고 위험해진다.

영화를 끌어가는 등장인물이 단촐하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외딴집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클로이'(키에라 앨런). 그런 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엄마 다이앤. 남들과 떨어진 호젓한 곳에서 살아가는 모녀와 그들의 집에서 영화가 전개된다. 두 사람이 거의 영화를 끌고 간다. 클로이가 장애인이자 여전히 많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영화 '런' 스틸컷 <영화 '런' 스틸컷>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런>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동시에, <서치>에서 보여준 긴장감과 자극적 요소로 관객들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클로이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고 어머니에 절대 의존하며 외부에서 고립된 채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러한 이유에서 나온 셈이다.
 
선한 동기와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순수한 선의 순환은 세상에 많지 않다. 그리하여 '순도'를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약간의 악이 허용된다. 극단적 예외는 평범한 예외와 본질상 동일한 현상이다. 영화의 결말은, 아마 감독이 영화의 감칠맛과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 넣은 마무리 반전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선과 악에 관한 성찰을 담았다.

영화 '런' 스틸컷 <영화 '런' 스틸컷>

결말의 평범한 예외는 영화 전편(全篇)에 펼쳐진 극단적 예외를 결과론으로 순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절대의존 관계에서 지배자로 위치를 역전한 클로이의 행태는 복수일 수도 사랑일 수도, 아니면 그 어느 중간지점이거나 설명되지 않는 결핍과 욕망의 심리 방정식일 수도 있다. 인간이 어느 정도는 언제나 병리적이며, 선과 악의 흐릿한 경계에서 도덕과 욕망을 조화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성찰은 사실 부수적인 것이고, <런>은 주로 재기발랄한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정체성을 표출하는 데에 집중했지 싶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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